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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로교_한국선교(1892-1942)
Southern Presbyterian Mission in Korea

사진출처: William Butler Harrison Papers, Accession number 138182, box 1, Presbyterian Historical Society, Philadelphia, PA. 

(ca. 1900  Kunsan, Korea)

미국 남장로교 한국에서 선교를 시작할 수 있었던 기초에는 미국 북장로교의 파송을 받고 1885년부터 한국에서 활동했던 호로스 그랜트 언더우드선교사가 있다.  언더우드는 1891년 첫 안식년을 맞아 본국으로 돌아가 여러 지역을 순회하면서 한국 선교 참여를 호소하는 선교 집회를 인도하였는데 그의 감동적인 설교와 강력한 도전은 당시 선교대회에 참석했던 일부 청년들의 삶의 바꾸어 놓았다. 이들 중에는 루이스 테이트와 윌리엄 레이놀즈가 있었다.  이듬해 1892년에 테이트와 레이놀즈는 교단 해외선교부를 설득하여 한국파송을 허락 받았다. 이 후 그해 가을 “7명의 선발대”라고 불리는 미국 남장로교단 소속 선교사들이 한국 땅을 밟게 되었다. 

당시 한국에는 이미 몇 개의 개신교 교단 선교사들이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새롭게 합류한 후, 각 교단이 담당할 선교지역을 분할하는 협정을 맺어 중복 사역을 피하고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된다.  이 중 남장로교은 호남 전체와 충청남도 일부, 제주도를 할당받았다.  하지만 7인의 선발대 및 이들을 뒤따라 속속 입국한 남장로교의 선교사들은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약 4년 동안 서울에 머물러야 했다. 동학농민운동의 확산, 청일전쟁 등과 같은 커다란 사회의 격변으로 인해 선교지에 투입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호남 사역을 시작한 것은 1896년이었다. 오랜 기다림 때문인지 이들은 환경의 어려움을 아랑곳하지 않고 현지로 이주하였으며 그곳에 삶의 터전을 틀고 열정적으로 사역을 하였다. 

미 남장로교는 호남 지역 5곳(전주, 군산, 목포, 광주, 순천)에 차례로 선교지부를 세우고 전도, 의료, 교육을 바탕으로 종합적인 선교를 수행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남장로교의 한국 선교는 일제가 모든 외국인 선교사를 한반도에서 추방했던 1942년까지 50년 동안 170명이 넘는 선교사들이 와서 학교와 병원을 세웠으며 복음을 전파하여 수많은 교회를 설립하는 값진 결과를 낳았다.  이처럼 한국 땅에 교회가 세워지는 데에는 선교사들 활동과 이들을 도왔던 이 땅의 성도들의 숨겨진 노력이 있었다. 이에 이들의 이야기가 한데 모아 본 웹사이트를 통하여 이용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The “Southern” Presbyterian Church’s mission (the official name of the church is the Presbyterian Church of the United States) in Korea began with Horace Grant Underwood, a “Northern” Presbyterian missionary in Korea, who took a sabbatical year in 1891 after having already served in Korea since 1885.  When he returned home to the U.S., he traveled to various regions of the country, including the South, to appeal for support for and participation in the Korean missions. Two young seminary students at one of the gatherings were deeply stirred by his address. Their names were Louis Tate and William Reynolds. The next year, these two successfully persuaded their denomination leaders; and then, they and five others called “A band of 7 pioneers” went to Korea. They arrived in 1892. 

After an agreement with other Protestant mission groups that were already settled in Korea, the Southern Presbyterian missionaries were assigned to work in the Southwestern part of Korea, including  Chulla-do, part of Chungcheongnam-do, and the island of Cheju-do. However, this group and other Southern Presbyterian missionaries who followed them to Korea had to remain in Seoul for about four years.  Major social upheavals, such as the spread of the Tonghak Peasant Movement in the Chulla-do area and the Sino-Japanese war, forced them to forego travel to the region. Finally, in 1896 they were allowed to begin their ministry work there. Perhaps because of the long wait they had to endure, they began working even more passionately despite encountering many difficulties. 

Until the Japanese imperialists expelled all foreign missionaries from the Korean Peninsula in 1942, more than 170 Southern Presbyterian missionaries came to Korea. They established schools, churches, and hospitals in five mission stations (Chunju, Kunsan, Mokpo, Kwangju, and Soonchun) and beyond. They carried out comprehensive missionary work based on their evangelism and assisted in many ways, including delivering both medical and educational services. This website explores their work and their success and their amazing dedication in greater detail to tell their remarkable and inspiring stories to others. 

1897년 전주교회 주일학교 (070425a, Box 9, PHS)
1916년 광주 수피아여학교 ("The Missionary Survey" 10/1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