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테이트 Lewis Boyd Tate 최의덕
- 1862년 9월 미국 중서부의 미주리주(Missouri) 주 캘러웨이 카운티(Calloway County)의 옥스배스(Auxvasse) 근처에서 출생
- 1889년 매코믹 신학교 입학 – 1892년 졸업
- 1892년 11월 3일, 한국에 도착하여 선교 활동 시작
- 1894년 3월, 전주로 이동하여 선교지부를 건설하며 본격적인 선교를 행함
- 1925년 안식년을 떠나 은퇴를 하기 전까지 전주 선교지부를 기반으로 일하며 순회 전도를 함
- 1929년 2월, 키웨스트(Key West)의 먼 바다로 항해 중, 배 위에서 심장마비로 소천
Lewis B. tate "the Pioneer"
선교사 루이스 테이트(Lewis Boyd Tate)는 한국 선교를 시작한 미국 남장로교의 “7인의 개척자(the pioneer band of Seven)”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7인의 개척자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한국 선교를 지원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진정한 개척자(the Pioneer)”였다. 루이스 테이트는 1892년 11월에 동료들과 함께 한국에 도착한 후 1925년 건강 악화로 은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갈때까지 전주를 중심으로 남장로교 선교를 개척하고 교회를 건설했다.
테이트는 전라북도 지역을 대표하는 선교사로서 순회 전도자, 목사, 건축가, 교회 행정가로 일하며 남장로교 선교의 기틀을 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호남지역 최초의 선교지였던 전주 선교지부(station)를 개척하여 호남지역 선교의 중심지로 건설한 일, 전주를 중심으로 전라북도 일대의 미개척지에 대한 순회전도를 통해 75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1천 명에 가까운 교인들에게 세례를 준 일, 호남지역 전체의 모교회라고 할 수 있는 서문교회를 설립하고 오랫동안 담임목사로 사역한 일, 그리고 교회법 전문가로서 한국의 장로교 교단조직을 만들 때 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기여한 일 등은 그의 활동 가운데서도 특별히 기록할 만하다. 그런데 테이트는 다른 무엇보다도 개척 전도자였다. 따라서 이 글은 그가 전주 선교지부를 개척하고 순회전도를 통해 많은 교회를 건설한 일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루이스 테이트 곁에는 그와 함께 개척 선교사로 내한했던 여동생 매티(Mattie S. Tate)와 의료 선교사였던 부인 마르타(Martha B. Ingold Tate)가 항상 함께 있었다. 매티 테이트는 루이스 테이트와 같이 개척 선교사로 내한하여 전주지부를 개척했다. 그는 독신 여성 선교사로서 고된 순회전도자의 삶을 살았다. 마르타 잉골드 테이트는 전주지역 최초의 서양 의사로서 처음에는 의료선교사로 활동하다가 루이스 테이트와 결혼한 후에는 남편을 도와 전도와 목회 및 교육에 전념했다.
Lewis B. Tate was one of the “Pioneer band of Seven” who founded the Korea mission of the Presbyterian Church (U.S) or the Southern Presbyterian Church. He was “the” pioneer as he was the first among the Southern Presbyterians to apply for a missionary position in Korea. Lewis Tate reached Korea in November, 1892 with his colleagues and returned to the United States in 1925 after his health failure. During that period of time, he pioneered the Southern Presbyterian Mission in Jeonju region and established many churches there.
As a representative missionary of the Jeonbuk region, Lewis Tate was a itinerant evangelist, pastor, architect, and church administrator, and contributed greatly to the establishment of the Southern Presbyterian Mission in Korea. As a pioneer missionary, he founded the Jeonju Station, the first station of the Southern Presbyterians” Korea Mission, and developed it into the center for their mission in Korea. As an itinerant evangelist, he founded 75 churches and baptized about 1,000 people. As a pastor, he established the West Gate Church in Jeonju, the mother church of the region, and ministered to it for many years.
Besides, Lewis Tate, with his expertise of ecclesiastical laws, helped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to establish laws and regulations when it was first organized. Nevertheless, he was first and foremost an evangelist. Therefore, this article placed an emphasis on his pioneering works to establish the Jeonju Station and to build many churches through his itineration.
Two persons who had always been with Lewis Tate were his sister Mattie and his wife Martha Ingold. Mattie Tate came to Korea with Lewis as one of the pioneer missionaries from the Southern Presbyterian Church. As a single-woman missionary, she chose to live a challenging life of an itinerant evangelist doing pioneering works for women and children in the Jeonju region. Martha Ingold Tate was the first medical missionary in the Jeonju Station, and worked as such. However, she quit full-time medical work and helped Lewis Tate by doing evangelistic, pastoral, and educational activities.